AI가 설계한 펩타이드, 스킨 롱제비티의 다음 단계
스킨케어 업계가 오랫동안 써온 단어 “안티에이징”이 2026년을 기점으로 조용히 퇴장하고 있다.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스킨 롱제비티”, 피부가 얼마나 오래, 얼마나 건강하게 기능하느냐를 묻는 새로운 언어다. 그리고 이 전환의 한복판에 AI가 설계한 펩타이드가 있다.
성분 개발의 공식이 바뀌고 있다
전통적인 성분 개발 방식은 수년에 걸친 반복 실험을 전제로 했다. 가설을 세우고, 합성하고, 피부에 적용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작하는 과정이었다. AI는 이 순서를 뒤집는다. 수천 가지 아미노산 서열의 생체활성(생물학적으로 세포에 영향을 미치는 능력)을 실험실에 들어가기 전에 모델링하고, 피부 침투력과 안정성을 예측한 뒤 가장 가능성 높은 후보만 실제 합성 단계로 보낸다. 성분 개발 주기가 수년에서 수개월로 압축된다.
이는 단순한 속도의 문제가 아니다. AI 모델이 다루는 변수의 범위 자체가 기존 화학자의 직관을 넘어선다. 아미노산 배열의 미세한 차이가 콜라겐 합성 신호, 세포막 투과성, 피부 내 체류 시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동시에 계산하는 것은 인간이 혼자 처리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AI는 이 복잡성을 처리하는 도구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가설을 생성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다기능 펩타이드 아키텍처
현재 주목받는 펩타이드는 단일 기능에 머물지 않는다. 하나의 펩타이드가 콜라겐 생성을 유도하는 신호를 보내는 동시에, 피부 세포의 수리 과정을 활성화하고, 탄력 개선까지 담당하는 다기능 구조(multi-functional architecture)가 등장하고 있다. 이른바 “세포와 대화하는 성분”이다.
이 흐름은 엑소좀(세포 간 정보를 전달하는 초소형 생물학적 입자)과의 결합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신호 펩타이드(signal peptide)는 콜라겐과 엘라스틴 생성을 촉진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캐리어 펩타이드(carrier peptide)는 구리나 아연 같은 미네랄을 피부 깊숙이 운반한다. 뉴로펩타이드(neuropeptide)는 감각 신경을 통해 피부 자극을 완화한다. 이 세 가지 기능이 하나의 제형 안에서 작동하는 구조가 현재 연구의 방향이다.
Pep 14, 세포 노화를 표적하다
세노테라퓨틱 펩타이드(세포 노화를 직접 표적하는 성분) Pep 14는 현재 가장 많이 언급되는 연구 대상 중 하나다. 피부 세포가 기능을 잃고 주변 조직에 염증 신호를 뿜어내는 상태, 즉 세포 노화(cellular senescence)를 줄이고, 동시에 조직 재생을 촉진하는 것이 Pep 14의 작용 방식이다.
주목할 부분은 레티놀과의 비교 데이터다. Pep 14는 레티놀과 비교할 만한 수준의 조직 재생 효과를 보이면서도, 레티놀이 일으키는 피부 자극(홍조, 각질, 민감화)이 없다. 다만 두 성분의 작용 경로는 다르다. 레티놀이 세포 분열과 각질 교체 속도를 높이는 방식이라면, Pep 14는 노화된 세포 자체를 제거하거나 기능을 회복시키는 경로를 택한다. 이미 레티놀을 사용 중인 피부라면 Pep 14를 대체재로 볼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층위에서 작용하는 보완재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NAD+ 그리고 세포 에너지의 문제
펩타이드와 함께 빠르게 주목받는 성분군이 있다. NAD+(니코틴아마이드 아데닌 다이뉴클레오타이드)와 그 전구체인 NMN(니코틴아마이드 모노뉴클레오타이드)다.
NAD+는 세포가 에너지를 만들고 DNA를 수리하는 과정에 필수적인 물질로, 나이가 들수록 피부 세포 내 농도가 낮아진다. NAD+가 부족한 세포는 손상 회복이 느려지고, 염증에 취약해지며, 콜라겐 생성 신호를 처리하는 능력도 떨어진다. NAD+ 또는 NMN을 외용으로 적용하거나 전달 시스템과 결합하는 연구가 활발해지는 이유다. 세포 에너지를 올리지 않고서는, 아무리 정밀한 펩타이드 신호를 보내도 세포가 그 신호에 반응할 여력이 없을 수 있다는 논리다.
노화의 근본 원인을 겨냥한다
2026년 스킨케어 연구가 공통으로 겨냥하는 표적은 “노화의 특징(hallmarks of aging)“이라고 불리는 생물학적 메커니즘들이다. 유전체 불안정성(genomic instability), 텔로미어 단축(telomere attrition, 세포 분열을 반복할수록 염색체 끝이 닳는 현상), 후성유전체 변화(epigenetic alterations, 유전자 발현 패턴이 바뀌는 것), 그리고 인플라메이징(inflammaging, 만성 저강도 염증이 노화를 가속화하는 상태). AI 설계 펩타이드는 이 각각의 경로에 개입할 수 있는 분자 구조를 설계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피부과학의 패러다임 전환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름을 채우거나 세포 회전율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세포 자체가 더 오래 건강하게 기능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교정”이 아닌 “유지”, 반응이 아닌 예방이다.
한국 R&D가 선도하는 정밀 제형
엑소좀, 성장 인자(growth factor), 고도화된 펩타이드 결합 연구에서 한국 R&D 기업들은 글로벌 선두 그룹에 속한다. 엑소좀-펩타이드 복합 제형은 활성 성분의 안정성과 피부 전달 효율을 동시에 높이는 접근으로, 일반 에센스나 세럼이 도달하지 못하는 피부 깊이에 신호를 전달할 수 있다. 이 기술이 대중 제품에 반영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현재 전임상 단계에 있는 포뮬레이션 상당수가 향후 2~3년 안에 시장에 나올 것으로 예측된다.
AI가 펩타이드를 어떻게 설계하나요?
AI는 수천 가지 아미노산 서열의 생체활성을 시뮬레이션하고, 안정성과 피부 침투력을 예측해 가장 효과적인 조합을 선별합니다. 기존에 수년 걸리던 성분 개발 주기를 수개월로 단축합니다.
Pep 14는 레티놀을 대체할 수 있나요?
Pep 14는 세포 노화(senescence)를 줄이고 조직 재생을 촉진하는 세노테라퓨틱 펩타이드입니다. 레티놀과 비교할 만한 결과를 보였지만, 작용 경로가 다르므로 대체보다는 보완적 관계에 가깝습니다.
AI 설계 펩타이드 제품은 이미 시판되고 있나요?
일부 브랜드가 AI 기반 성분 발굴로 제품을 출시하고 있지만, 대부분은 아직 전임상 또는 초기 임상 단계입니다. 한국 R&D 기업들이 엑소좀-펩타이드 결합 제형에서 앞서 있습니다.